바쁜 일상 속에서 ‘여행’은 늘 우리에게 쉼표 같은 시간이다. 새로운 풍경, 낯선 음식, 다른 문화와의 만남은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우리가 무심코 떠나는 여행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 사실 여행은 생각보다 많은 자원을 소비한다. 특히 항공 여행은 단기간에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대표적인 활동 중 하나다.
국제민간항공기구에 따르면 비행기 한 대는 승객 한 명당 1km 이동 시 약 90~120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는 기차나 버스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여행지에서의 과도한 소비, 플라스틱 쓰레기, 숙소의 에너지 낭비까지 더해지면 우리가 즐긴 여행이 환경에 남긴 발자국은 꽤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포기할 수 없다면, 방향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이제는 ‘지속 가능한 여행’, 다시 말해 친환경 여행이 필요한 시대다. 꼭 거창하거나 불편하지 않아도 된다. 이동 수단을 바꾸고, 지역 상점에서 소비하고, 쓰레기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타는 이유, 지역과 함께하는 로컬 소비의 가치, 그리고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한 실천 팁을 나눠보고자 한다.
비행기 대신 기차 – 속도보다 풍경을 즐기는 법
‘빠르게 멀리’ 떠나는 비행기는 효율적인 이동 수단이지만, 환경 측면에서는 고민이 필요한 선택이다. 항공기 1회 왕복 비행이 한 개인의 연간 탄소 배출량의 절반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을 정도로, 비행은 생각보다 큰 환경적 부담을 준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많은 유럽 국가들과 일본, 한국 등에서는 기차나 고속버스 같은 저탄소 대중교통이 점점 더 각광받고 있다.
기차는 같은 거리 이동 시 비행기에 비해 탄소 배출량이 최대 80% 이상 적다. 또한 철도는 이미 정해진 노선을 따라 움직이고, 고속열차는 시간 대비 효율도 높다. KTX, SRT 같은 고속철도는 서울-부산 구간을 약 2시간 반 만에 이동할 수 있어, 실제로 비행기보다 시간이 더 단축되기도 한다. 특히 시내 중심부에서 출발해 도시 안으로 바로 도착하니, 공항까지 가는 시간과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기차 여행의 매력은 ‘이동’ 그 자체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논밭, 산과 강, 작은 역들의 풍경은 자동차나 비행기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이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즐기며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기차 여행은 ‘속도’보다 ‘여유’를 선택하는 방법이다. 친환경 여행의 핵심은 단순히 탄소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여행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데 있다.
로컬에서 소비하기 – 관광지보다 ‘생활 속 여행지’로
여행지를 선택할 때 많은 사람들이 SNS 속 핫플레이스나 유명 맛집을 참고한다. 물론 그런 장소들도 즐거운 경험이지만, 진짜 지속 가능한 여행은 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녹아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로컬 상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재래시장에서 식재료를 사며, 지역민이 운영하는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묵는 것. 그것이 로컬 소비의 진정한 의미다.
예를 들어,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대형 체인 마트 대신 서귀포 올레시장에서 감귤청과 지역 어묵을 사고, 유기농 농장에서 만든 수제 잼을 구입하는 것은 단순한 소비 이상의 가치를 담는다. 그렇게 모인 수익은 다시 지역 사회로 돌아가고, 소규모 상인들의 자립을 돕는다. 이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동시에, 여행자로서의 ‘책임 있는 소비’를 실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요즘은 제로웨이스트 숍이나 리필 스테이션, 로컬 공방 체험 등 친환경 여행자를 위한 콘텐츠도 풍부하다. 여행지에서 쓰레기를 줄이고, 직접 물건을 만들어보거나 로컬 식재료로 요리 체험을 하는 것 역시 특별한 여행이 될 수 있다. 지역의 특색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선 문화 교류의 시작이 된다.
로컬 소비는 단지 ‘값싸고 덜 유명한 곳’에서 돈을 쓰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더불어 여행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유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고, 때론 더 깊이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실천 가능한 친환경 여행 팁 – 작지만 의미 있는 선택들
지속 가능한 여행은 거창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하듯, 여행 중에도 작은 습관의 변화만으로도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다음은 실제로 실천해볼 수 있는 친환경 여행 팁들이다.
- 다회용 텀블러와 장바구니 챙기기
여행지에서는 외부 음료와 포장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개인 텀블러, 다회용 수저 세트, 장바구니를 챙기면 하루에 최소 3~4개의 일회용품을 줄일 수 있다.
- 친환경 숙소 선택하기
수건 매일 교체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두세요’라는 안내 문구에 동의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와 물 사용을 절약할 수 있다. 최근에는 ‘비건 숙소’, ‘제로에너지 게스트하우스’도 늘고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 걷거나 자전거 타기
여행지에서는 자동차 대신 걷기나 자전거를 선택해보자. 도시 곳곳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고, 탄소 배출도 없다. 서울, 부산, 전주, 제주 등에서는 공유 자전거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 쓰레기 되가져오기 & 분리배출
자연 속 여행지에서는 쓰레기통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개인 쓰레기 봉투를 챙겨, 쓰레기를 되가져오거나 분리배출하는 것도 매우 기본적인 에티켓이다.
- 지역 NGO나 환경단체 체험 참여
여행지의 환경 단체가 주관하는 플로깅 행사, 숲 해설 프로그램, 해양 쓰레기 줍기 활동 등에 참여해보자. 단순한 여행을 넘어 그 지역의 환경과 더 깊이 연결되는 시간이 된다.
지구는 우리가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여행을 통해 위안을 얻는 만큼, 우리가 머문 자리를 조용히 정리하고 나오는 일도 여행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부터라도”라는 태도가 친환경 여행의 출발점이다.
지금은 여행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기의 시대이기도 하다. 기후 위기, 생태계 파괴, 쓰레기 문제… 이 모든 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여행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지만, 우리가 떠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속도보다는 방향, 소비보다는 연결을 추구하는 여행.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꿈꿔야 할 친환경 여행이다.
다음 여행을 계획할 때, 목적지만큼이나 여행 방식도 함께 고민해보자. 기차표를 예매하고, 시장을 걷고, 다시 사용할 물건들을 챙기는 것. 그렇게 우리가 떠나는 하나하나의 여행이 조금 더 지구를 살리는 여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