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위한 실천은 어렵지 않아야 오래 간다. 거창한 프로젝트보다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플로깅’은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는 환경 운동이다. ‘플로깅’은 스웨덴어의 ‘줍다(plocka upp)’와 영어의 ‘조깅(jogging)’이 합쳐진 단어로, 말 그대로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다. 운동도 하고 환경도 지키는, 일석이조의 지속 가능한 습관으로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나 역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평소 일상이 바쁘다 보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던 중 지역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동 플로깅 캠페인’이라는 게시글을 발견했다. “누구나 참여 가능, 운동화만 신고 오세요!”라는 문구에 이끌려, 어느 주말 오전 나는 생전 처음 ‘쓰레기 줍깅’에 참여하게 되었다.
참여의 시작: 무작정 가볍게 나선 그날 아침
모임 장소는 우리 동네 공원 입구. 토요일 아침 9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족 단위, 친구들끼리, 혼자 조용히 온 사람까지. 연령대도 다양했고, 옷차림도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손에는 장갑과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모였다는 생각에 어색함보다는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담당자분의 안내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조깅을 하면서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주워주세요. 무리하게 뛰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천천히 이동하시면 됩니다.” 그 말처럼 이 활동은 ‘속도’보다는 ‘의미’가 중요한 운동이었다. 나와 같은 초보자들에게도 전혀 부담 없이 다가올 수 있었다.
공원 주변을 따라 걷고, 달리고, 멈춰서고, 다시 걷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풀숲 사이에 버려진 담배꽁초, 벤치 밑의 플라스틱 컵, 심지어 술병까지… 생각보다 많은 쓰레기들이 눈에 띄었다. 평소 산책할 땐 무심코 지나치던 것들이 플로깅을 하면서는 전부 ‘발견’의 대상이 되었다. 쓰레기를 줍기 위해 몸을 숙이고, 다시 일어나 달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온몸의 근육이 골고루 사용되는 느낌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초등학생 아이가 종이컵을 주워 “이건 종이류니까 따로 버려야 해요”라고 말하던 장면이다. 그 아이는 부모님과 함께 참여했는데, 환경 교육이 가정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플로깅은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것을 넘어, 세대 간의 가치 공유와 의식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체감한 순간이었다.
땀과 쓰레기봉투가 쌓일수록 보이는 것들
약 1시간 반 정도 활동을 하고 나니, 쓰레기봉투가 꽤 묵직해졌다. 단순한 산책보다 훨씬 많은 칼로리가 소모됐고, 등에는 땀이 흠뻑 배어 있었다. 하지만 몸은 가벼웠다. 마치 운동을 통해 독소를 뺀 것처럼, 동시에 마음까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자연을 돌보는 행위가 곧 나를 위한 치유였던 셈이다.
이 캠페인을 통해 무엇보다 크게 느낀 것은, 작은 행동이 큰 울림을 준다는 사실이었다. 1시간 반 동안 모인 쓰레기의 양을 보며, 한편으론 ‘이만큼 방치되어 있었다니’라는 놀라움과 함께, ‘우리가 이렇게나 치울 수 있었다’는 뿌듯함이 동시에 들었다. 몇몇 참여자들은 “다음엔 우리 동네 골목길도 한번 돌아보자”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주최 측에서는 분리수거에 대한 안내 팜플렛과 간단한 간식, 그리고 손수 만든 ‘플로깅 인증 스티커’를 나눠주었다. 눈에 띄는 상금이나 상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나 역시 그날 이후 몇 차례 더 플로깅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만 하던 시절엔 막연했지만, 직접 몸을 움직여보니 ‘지금 여기서부터’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플로깅, 일상이 되다 – 함께할수록 힘이 되는 실천
그날 이후 나는 나만의 루틴으로 플로깅을 실천하고 있다. 조깅을 나갈 때마다 가방 속에 작은 쓰레기봉투 하나와 장갑 한 쌍을 챙기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회사 동료나 친구들과도 이 활동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환경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생겼다. SNS에 활동 후기를 올리자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고, 그 중 몇몇은 실제로 플로깅을 실천하기도 했다. 이런 확산은 단순한 SNS 캠페인을 넘어, 지역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다.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할 때 더 강한 동력이 생긴다는 점이다. 혼자 조깅을 하면서는 쉽게 지치거나 루틴이 무너질 수 있지만, 플로깅은 ‘같이하는 재미’가 있고, 때론 책임감이 생기기도 한다. 매달 한 번씩 모이는 지역 커뮤니티 플로깅 모임은 이제 내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서, 건강 관리,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심리적 안정 등 다양한 부수 효과를 가져온다. 쓰레기를 줍는 행동 하나가, 나와 우리가 사는 도시를 바꾸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우리는 종종 거창한 해결책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작고 지속적인 행동에서 시작된다. 플로깅은 그 대표적인 예다. 운동복 하나, 장갑 한 켤레, 쓰레기봉투 하나만 있으면 누구든지 시작할 수 있다. 혼자도 좋고, 친구와 가족과 함께라면 더 좋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행동하는 것이다.
다음 주말, 조깅을 나설 예정이라면 쓰레기봉투 하나 들고 나가보자. 주변을 한 번 더 살펴보며 천천히 걷고 달려보자.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면, 우리는 더 깨끗한 거리와, 더 맑은 공기, 그리고 더 건강한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플로깅, 그건 단순한 환경 운동이 아니라 ‘삶의 자세’다.